아스톤 빌라 FC
1. 개요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역사와 함께 해온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클럽. 워낙 전통적인 강팀으로 유명하다보니 현지에서도 팬들의 자부심이 정말 대단하고 다른 팬들도 많이 알아주는 편이다. 버밍엄을 연고지로 삼고 있으며 같은 연고지인 버밍엄 시티와는 더비 라이벌 관계이다. 버밍엄 근교를 연고지로 삼는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도 미묘한 라이벌 관계에 있다.
한글 표기는 Aston 부분을 '아스톤'으로 읽는 경우도 있고 '애스턴'으로 읽는 경우도 있으나, 언론이나 포털 사이트 등에서는 후자, 축구팬 사이에서는 전자가 좀 더 우세한 편.[4] 국내 케이블 방송의 축구 중계나 언론에서는 '''A. 빌라'''[5] 라고 쓰는 경우도 많은데, A. Villa라고 쓰면 외국 웹에서는 검색이 거의 되지 않는다.
2. 역사
2.1. 창단과 전성기, 그리고 격동기
1874년에 빌라 크로스 웨슬리언 성공회 교회에서 잭 휴즈, 프레데릭 매튜스, 월터 프라이스, 윌리엄 스캐터굿 등 4명에 의해 창단되었으며, 첫 경기를 럭비 팀인 아스톤 브룩 세인트 메리 팀과 치렀다. 당시에는 럭비팀과 경기를 했기 때문에 경기 규칙도 달랐으며 전반부는 럭비 규칙으로, 후반부는 축구 규칙으로 시합을 치렀다고 한다.
이후 1884년에 팀 선수 출신인 조지 램지가 감독이 된 뒤 1887년에 FA 컵을 우승하면서 빠르게 명문 팀으로 급부상했다. 램지 감독이 지휘한 42년 동안 팀은 리그와 FA 컵을 각각 6번이나 제패하는 위대한 업적을 지녔다고 한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아스톤 빌라만큼 좋은 성적을 지닌 팀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막강했었다고 한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팀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1920년에 FA 컵을 우승한 이후로 37년 동안 무관의 세월을 보내다 1957년 FA 컵 결승전에서 '버스비의 아이들'을 위시한 최강팀 맨유를 꺾어 오랜 숙원을 달성했다. 이후 1961년 리그 컵 우승 외에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중위권만 오가다가 1967년부터 2부 리그로 떨어지다 1970년에는 급기야 3부 리그까지 떨어진 바 있었다.
2.2. 두번째 부흥기
그렇게 어려움을 겪던 팀은 1974년에 론 손더스 감독이 부임하고 1975년에 리그 컵 우승과 함께 1부 리그로 승격하면서 전환기를 마련했다. 이후 1975년에 회장 자리를 내려놓은 덕 앨리스를 대신해 새 회장인 윌리엄 덕데일 경이 오면서 팀은 활기를 되찾아 1977년에 또 다시 리그 컵 우승을 한 뒤 더 전진해서 1980-81 시즌에는 14명의 스쿼드로 71년만에 리그 우승 컵을 차지했다.
왜 하필 14명이냐 하면, 당시 손더스호는 구단의 자금 사정 때문인지 더 나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여느 구단보다 더 적은 규모인 14명의 1군 스쿼드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 스쿼드들의 이름을 얘기하자면, 지미 리머, 케니 스웨인, 켄 맥노트, 데니스 모티머, 데스 브렘너, 고든 코완스, 토니 몰리, 게리 쇼, 앨런 에반스, 피터 위드, 게리 윌리엄스, 콜린 깁슨, 데이비드 제디스, 어몬 디시였다.
그런데 손더스호는 1980-81 시즌을 앞두고 더 큰 야심에 타올라 있었다. 14명으로 팀을 이끈다는 건 무모하지만 이전에 두 번 리그 컵을 들어올릴 때와 같은 자신감을 무기로 삼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선수들의 투지를 강조하여 강해진 이들은 초반부터 점차 승점을 쌓기 시작하여 특히 1980년 9월 13일에 에버튼에게 패한 뒤 곧바로 12경기 무패를 달성하여 팀은 상위권으로 올라갔다. 이후 잔인했던 12월을 거쳐 박싱데이로 돌입하면서 팀은 또 10경기 연속 무패로 선두권에 올라가 입스위치 타운, 아스날 FC와 1위 경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전은 14명밖에 없었고, 교체는 3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악물고 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선두이던 입스위치는 시즌 막판에 연패의 늪으로 빠져들자 이 틈을 탄 빌라는 1981년 4월 25일에 강등권 팀인 미들즈브러 FC를 격파했고, 5월 2일에는 입스위치까지 미들즈브러에게 지자 우승이 확정, 이로써 71년만에 우승 컵을 들게 되었다. 당시 언론들은 14명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팀이 우승한 것에 대해 '아이언 맨'이라고 칭송하게 되었다.
1981년의 우승으로 유러피언 컵 티켓을 얻은 또 다른 영역인 유럽 무대에 눈을 돌리고 9명을 추가 영입해 스쿼드가 23명이 된 팀은 1라운드부터 아이슬란드 리그 우승팀인 발루르를 이기고 이후 동독의 디나모 베를린을 꺾어 8강에 진출했으나 그 사이 론 손더스가 구단과의 갈등으로 인해 버밍엄 시티로 옮겼고, 후임으로 수석 코치인 토니 바튼이 취임하여 팀을 잘 수습해 디나모 키예프와 1차전에서 0-0, 2차전에서 켄 맥노트의 헤딩골로 2-0 승리를 거두고 준결승에서 RSC 안데를레흐트와의 혈투 끝에 1차전에서 1-0, 2차전에서 0-0으로 승리하여 마침내 결승전에 진출했는데, 상대는 유럽 최강팀인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결승 장소는 페예노르트의 홈구장 더 카위프. 당시 독일 울트라스와 잉글랜드 훌리건의 난동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 병력이 투입된 상태로 개최된 이 결승전에서 초반에 악재가 터졌는데, 바로 골키퍼 지미 리머가 어깨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후 6분 만에 백업 골키퍼인 나이젤 스핑크로 교체되어 힘을 되찾은 팀은 게리 윌리엄스의 파울에도 불구하고 전반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후반전에서는 바튼 감독이 세운 역습 전술에 따라 칼 하인츠 루메니게, 디터 회네스, 파울 브라이트너 3인방의 압박 전술을 이겨내고 나이젤 스핑크의 선방에 이어 게리 윌리엄스가 베르나드 뒤르베르거를 벗겨내고 이어 왼쪽에서 패스를 주고 달려들어가던 토니 몰리에게 패스를 주어 몰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골키퍼 한스 바이너를 앞에 두고 왼쪽으로 드리블하여 피터 위드에게 연결, 위드가 그대로 골을 꽂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바이에른 뮌헨의 디터가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득점으로 이끌어냈지만 심판의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어 바이에른 팬들은 크게 실망했고, 바이에른은 오히려 공격에 나섰지만 빌라가 이를 막아내어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팀은 창단 첫 번째 빅 이어를 높이 쳐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팀 최고의 전성기이다.
1982년에 덕 앨리스 구단주가 7년만에 다시 온 뒤에도 1988-89 시즌에 2부 리그에서 뛴 것을 제외하고 대체로 중위권을 마크해 왔고, 드와이트 요크나 폴 머슨, 페테르 슈마이켈,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디온 더블린 등 걸출한 스타나 노장들도 팀을 거쳤으며 그레이엄 테일러와 론 엣킨슨 등 명장들도 거쳐갔다.
그러나 'Deadly Doug'이라는 별명이 붙은 엘리스 회장은 구단에게는 긴축 재정을, 감독에게는 성적에 대해 압박을 가했으며, 1990~2000년대 들어서는 전력 보강에도 소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그가 재임하던 시절에 4년 이상을 버틴 감독이 한 명도 없었는데, 특히 1991~1994년까지 재임했던 론 엣킨슨은 프리미어 리그 원년인 1992-93 시즌에 맨유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1994년에는 코카콜라 컵(풋볼 리그 컵)에서 우승했지만 1994-95 시즌 도중에 성적 부진으로 쫓겨났다.
후임으로 레스터 시티를 맡고 있던 브라이언 리틀이 감독이 되었는데 해당 시즌 18위를 기록, 강등당한 19위 팰리스에 승점 3점 앞서 가까스로 잔류했다.[6] 리틀 감독은 게리 찰스, 드와이트 요크, 앨런 라이트, 이안 테일러, 마크 드레이퍼로 팀을 리빌딩하며 첫 풀시즌이었던 1995/96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4위에 리그컵에서 리즈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했고, FA컵 준결승에 올랐다. 클럽의 전설적인 골키퍼인 나이젤 스핑크는 그 시즌을 끝으로 빌라에서 떠났다. 1996/97 시즌에도 5위를 기록했지만 1997/98 시즌 개막 4연패로 시작했고 유럽대항전 병행[7] 과 맞물려 1998년 2월 15위에 머물며 강등 위기를 겪자 리틀은 경질되었고, 존 그레고리가 감독이 되었다.
그레고리가 감독이 되자마자 빌라는 11경기 9승을 거두며 15위에서 7위로 뛰어올랐고 페어플레이 랭킹으로 UEFA컵에 진출했다. 드와이트 요크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음에도 새로 영입한 폴 머슨과 디온 더블린의 활약으로 후반기의 상승세는 1998/99시즌까지 이어져 빌라는 개막 후 12경기 무패를 달렸다. 그리고 전반기 크리스마스 시점에는 프리미어리그 1위에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 후반기 급격한 DTD를 겪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FC, 첼시 FC, 리즈 유나이티드에 순위를 내줬고 결국에는 같은 유니폼 색상의 웨스트햄에도 밀려 6위로 UEFA컵은 커녕 인터토토컵조차 나가지도 못했다.[8] 1999/00 시즌에는 리그에서 6위를 했고, FA컵에서 43년 만에 결승에 올랐지만 로베르토 디 마테오가 결승골을 넣은 첼시 FC에 0:1로 져 준우승했다.[9][10] 리그컵도 준결승까지 갔지만 레스터 시티에 패했다. 2000/01 시즌은 리그에서 8위를 기록했지만 이번에는 인터토토컵에서 우승하여 UEFA컵에 진출했다.[11] 2001/02 시즌은 초반에는 선두에 올랐지만 11경기 1승으로 중위권으로 밀려났고, 덕 엘리스 구단주와 불화를 겪던 존 그레고리 감독은 2002년 1월 돌연 사임을 선언했다.
그레이엄 테일러가 12년 만에 빌라 감독으로 컴백했고, 지난 시즌과 같은 순위인 8위로 마감했다. 여기까지는 7년 연속 10위 안에 들었으나 2002/03 시즌에는 오랜만에 승격한 지역라이벌 팀 버밍엄 시티에 두 번 모두 패배하는 굴욕을 겪으며 28년만에 순위에서 뒤처지며 강등 위기를 겪었고 최종전을 앞두고 마지막 홈경기에 가서야 13연패의 꼴찌 선덜랜드를 꺾고 간신히 16위로 잔류했다. 테일러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사임했고, 리즈 유나이티드를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으로 이끌었던 데이비드 오리어리가 빌라의 신임 감독이 되었다.
2003/04 시즌 개막 후 13경기에서 단 2승에 그치며 빌라는 강등권에 있었다. 하지만 12월을 기점으로 반등에 성공하며 리버풀, 뉴캐슬과 시즌 막판까지 챔피언스리그 막차인 4위 경쟁을 했다. 아쉽게 마지막 2경기에서 1무1패에 그치며 뉴캐슬에 골득실에서 밀려 6위가 되었고 그 시즌 리그컵은 11위 팀이었던 미들즈브러 FC가 우승하고, FA컵은 맨유가 우승한 가운데 2부리그 팀인 밀월 FC가 준우승해서 6위임에도 UEFA컵도 가지 못했다.[12] 2004/05 시즌에는 10위를 하더니 2005/06 시즌에는 윌프리드 보우마, 케빈 필립스, 밀란 바로시를 데려오고도 16위에 그쳤다.
늘상 팬들의 의사조차 무시해가며 독불장군식으로 운영하던 엘리스 회장은 이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수없이 받았고, 선수들도 엘리스의 학정으로 인해 언론에 불만을 표출했다. 결국 2006년 8월에 미국 NFL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구단주 랜디 러너[13] 에게 약 6천2백6십만 파운드(약 1,130억원)로 구단을 매각했다. 그리고 오리어리 감독은 사퇴했고 마틴 오닐이 감독이 되었다.
2.3. 마틴 오닐 재임 시절 (2006~2010)
새 구단주인 랜디 러너는 팬들에게 반감을 사는 타 구단주들[14] 과는 달리 팬들에게 다가가는 스타일. 팬들과 펍에서 어울리면서 팬들의 의견을 듣고 팀에 반영한다. 미들즈브러 FC의 스티브 깁슨 구단주와 더불어 구단주의 바람직한 이상향으로 평가된다.구단을 인수한것도 영국 유학시절 아스톤 빌라의 팬이 되어서라고 한다. 그리고 셀틱 FC에서 명장으로 평가받았던 마틴 오닐 감독을 전격 영입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열의를 보였다.
마틴 오닐 새 감독 체제 하의 아스톤 빌라는 첫 시즌인 2006-07 시즌, 지난 시즌 16위였던 팀을 11위로 끌어올렸다. 초반에는 9경기 무패, 그리고 11경기 무승, 그리고 9경기 무패의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였지만 강등 걱정 없이 중위권으로 무난하게 마쳤다. 그리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왓포드 FC로부터 애슐리 영을, 올림피크 리옹에서 욘 카레브를 영입했다.
2007-08 시즌에는 지난 시즌보다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이며 프리미어 리그 6위로 마무리했다. 욘 카레브와 가브리엘 아그본러허, 그리고 애슐리 영의 삼각편대는 33골을 합작했다. 그리고 애슐리 영은 17개 도움으로 파브레가스에 이어 프리미어 리그 도움 2위를 기록했다. 빌라의 총 팀득점은 71골로 준우승팀인 첼시와 4위 팀 리버풀보다 각각 6골, 4골 더 많이 득점했다. 51번이나 허용한 실점 수는 좀 아쉽지만, 맨유에게 호구잡히며 2경기 홈어웨이에서 8골을 내준 경기나, 토트넘과 첼시 원정에서 각각 4-4로 비기며 명승부 대첩급 경기를 펼친 것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빌라의 수비는 괜찮은 편이었다.[15] 맨유를 제외하면 강팀에 쉽게 지지 않는 면모[16] 를 보였다. 빌라는 2월까지 리버풀과 에버튼, 맨시티와 치열한 4위 자리 쟁탈전을 벌였지만, 5경기 무승에 빠졌고, 같은 기간에 리버풀은 연승행진을 달리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 4위는 점점 더 멀어졌다.
2008-09 시즌, 지난 시즌 좋았던 분위기를 더욱 이어갔고 캐류-아그본라허-영 삼각편대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며 25라운드까지 15승6무4패로 첼시와 아스날을 제치고 3위까지 올랐다. 겨울이적시장에서는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 에밀 헤스키를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5위 아스날과는 승점 7점 차로 벌리며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듯 했다. FA 컵에서도 에버튼을 만나 16강에서 일찌감치 탈락한 상황. 우승경쟁에서 4위까지 떨어지자 첼시는 펠리페 스콜라리를 전격 경질했고, 거스 히딩크를 소방수로 임시 감독에 앉혔고, 첫 상대부터 '첼시의 무덤'[17] 빌라 파크에서 빌라와 만나게 되었다. 뒤숭숭한 첼시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빌라는 리그 13경기 무패로 기세가 올라와 있던 상황. 그런데 히딩크 감독의 첼시 데뷔전에서 빌라는 첼시에 0-1로 패하며 무패 행진이 깨져버렸다. 베스트 11을 무리하게 돌려 경기력이 떨어지자 빌라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올인하기 위해 UEFA 컵 32강 2차전 CSKA 모스크바 원정에 2진급을 내며 탈락했다. 그러나 스토크 시티와의 홈에서의 27차전에서 후반 43분까지 2-0으로 앞서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리 2골을 허용하며 2-2로 비겼다. 빌라는 프리미어 리그 9경기 무승, 공식 경기 13경기 무승을 기록했고, 이를 틈타 연승행진을 시작한 아스날에게 4위 자리를 빼았겼다. 결국 빌라는 지난 시즌에 이어 프리미어 리그 6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라는 법칙에 랜디 러너 구단주도, 마틴 오닐 감독도, 노장 골키퍼 브래드 프리델도 울었다.
2009-10 시즌을 맞아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다시 노리는데 전부터 리버풀로 가고 싶다며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챔피언스 리그 뛰게해주세요라며 징징대는 주장 가레스 배리를 이적 허가 시켰더니 이게 챔피언스 리그도 안나가는 맨체스터 시티로 가버렸다.(...)[18] 대신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 리차드 던을 영입했다. 던 이외에도 스튜어트 다우닝과 스티븐 워녹도 영입했다. 유망주 파비안 델프도 3부리그 리즈 유나이티드로부터 영입했다.
2009-10 시즌 전 프리 시즌 2009 피스 컵 안달루시아 대회에서 유벤투스를 승부차기로 꺾고 우승했다.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오스트리아의 라피트 빈에게 원정 다득점으로 광탈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서 리버풀이 부진한 가운데 아스톤빌라는 이적생 리차드 던과, 스티븐 워녹의 뛰어난 수비력과, 아그본라허와 밀너, 애슐리 영의 활약으로 전반기 19경기 동안 10승5무4패로 승점 35점을 획득.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 전반기 최다 승점을 기록했다. 전반기 리버풀 원정에서 3-1 승리, 첼시에 홈에서 2-1 역전승, 그리고 천적 맨유를 올드트래포드에서 1-0으로 승리하며 빅4에 그랜드슬램을 기록할 뻔했다. 하지만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던 아스날 원정에서 후반 20분까지 0-0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으나 부상에서 돌아와 교체 투입된 아스날의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2골을 허용하며 0-3으로 아쉽게 패했다. 그리고 빌라 파크에서 부진에 빠진 리버풀에게 종료 직전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리그 첫 연패를 허용했다. 칼링 컵에서는 준결승에서 블랙번을 상대로 홈에서 6:4 명승부를 펼친 끝에 합계 7:4로 결승에 진출했으나 맨유에 1-2 역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리버풀전 패배 후 10경기 무패를 기록했지만 무승부만 7개로 웨스트 햄이나 선더랜드, 울버햄튼 등 하위권 팀을 상대로도 이기지 못하며 아쉬운 경기를 했다. 그러다가 첼시 원정에서 프랭크 램파드에게 4골을 헌납하며 충격적인 7:1 패배를 당했고 10경기 무패 행진이 깨졌다. 그리고 2주일 뒤에는 FA 컵 준결승에서 첼시를 상대로 다시 한번 0-3으로 완패당했다. 리그 무패가 종료된 뒤 5경기에서 4승1무를 기록하며 마지막까지 4위 자리를 놓고 토트넘과 아스톤빌라, 리버풀과 경합을 펼쳤다. 하지만 37라운드 맨시티 원정 단두대 매치에서 먼저 선제골을 넣고도 1-3으로 역전당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좌절되었다. 빌라는 3년 연속 6위로 마감했다.
오닐의 아스톤빌라 감독 재임 시절 랜디 러너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2006-07 시즌 중위권으로 도약한 뒤 2007/08에서 2009-10 시즌까지 호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아스톤 빌라는 빅4인 첼시, 맨유, 리버풀 등 강팀들 그리고 에버튼, 맨시티, 토트넘 등 중상위권의 강팀들을 상대할 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대등한 승부를 벌이며 팬들에게 재미있는 경기들을 선사했다.
빌라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으로 6위를 기록했지만, 전반기에서 시즌 2/3분기 까지는 4위권 내에 항상 있다가 마지막 1/3을 잘 보내지 못해서 DTD, 성적이 하락하여 6위로 떨어지는 현상을 반복했다. 그래도 러너 구단주는 오닐에게 굳건한 신임을 보여줬고 아스톤 빌라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그러나 오닐 시절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기에 빌라의 몰락의 그림자가 엄습해있었음을 아무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0-11 시즌 8월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마틴 오닐 감독은 돌연 사퇴를 선언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랜디 러너 구단주가 오닐과 불화를 일으키다가 오닐을 해고했다."고 보도했지만 실상은 이와 달랐다. 러너 구단주는 감독이 마음에 안 들어 해고할 만큼 전임 구단주 덕 앨리스처럼 괴짜가 아니었다. 러너가 오닐을 무시하고 가레스 배리와 제임스 밀너를 오일머니 맨시티에 팔자 오닐이 분노하여 사임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배리는 2008-09 시즌 빌라가 챔스에 진출하지 못하면 챔스권의 팀으로 이적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결국 빌라가 6위로 챔스에 못나가며 맨시티로 이적했고, 밀너의 경우는 빌라가 구단 역사상 최고 주급을 제시했지만 더 높은 주급을 제시한 맨시티로 이적했다. 프로는 결국 돈이기 때문에 두 선수 모두 더 높은 주급과 유럽대회 출전 야망을 위해 빌라를 떠난 것이다.
오닐이 사임한 까닭은 더 이상 러너 구단주가 아스톤 빌라를 위해 이적 자금을 충당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닐은 아스톤빌라에서 '''4년 재임 기간 동안 1억 20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이적 자금을 쏟아부었다. 당시 한화로 2000억. 맨유, 맨시티, 첼시, 리버풀처럼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거나 구단주가 엄청난 머니를 가지고 있는 팀이라면 감당할 수 있겠지만, 공업도시 버밍엄을 연고로 하며 수익구조에 한계가 있는 빌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거금을 주고 데려온 선수들이 잘 해줬으면 다행이었지만 대부분이 실패하는 바람에 빌라의 재정 압박은 심화되고 있었다. 마틴 오닐이 영입한 선수들 중 제임스 밀너와 애슐리 영, 욘 카레브, 리차드 던은 성공했다. 그러나 나이젤 리오 코커, 스티브 시드웰, 커티스 데이비스, 잿 나이트, 하비브 베예, 루크 영 등 대부분은 한 시즌 정도 반짝하거나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데려온 선수들도 주로 고비용 저효율의 영연방 중심이었고, 유럽의 값싸고 재능있는 선수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게다가 오닐은 빌라의 유스시스템에서 나온 재능있는 유망주들을 홀대했고, 그 결과 게리 케이힐, 리암 리지웰, 크레이그 가드너 등이 다른 팀들로 떠나고 말았다. 그 중에서 개리 케이힐은 볼튼에서 포텐을 터뜨리며 잉글랜드 국가대표 센터백이 되었고, 첼시로 이적하여 주전 센터백이 되었다. '''유망주들을 홀대한 결과 전력의 기반과 뎁스는 날이 갈수록 약화되었다.'''
또한 2000억원을 사용한 것에 비해서 3년 연속 6위를 기록한 것에도 비판이 제기되었다. 오닐의 전술은 쉽게 지지 않는 축구였지만 쉽게 이기지도 못했다. 강팀 상대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만 약팀 상대로도 쉽게 덜미를 잡혔다. 주 전술은 아그본라허-애슐리 영-욘 카레브의 삼각편대를 바탕으로 빠른 역습에 의존한 잉글랜드식 축구였다. 이러한 전술은 강팀을 상대로 잘 먹힐 때가 많았지만, 약팀에게도 비슷한 전술을 사용했고, 그 결과 약팀에게도 승점을 많이 잃었다.
또한 베스트 11 외의 선수들을 기용해 로테이션을 가동하며 변화를 주겠다는 생각을 안했고, 안그래도 얇은 스쿼드에 항상 고정된 멤버들이 가동된 결과 빌라는 시즌 막판만 되면 주축 선수들의 체력이 방전되어 스스로 무너졌고, 실력이 있는데도 벤치에서 실력이 썩고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또한 주급이 싼 유망주 대신 검증된 선수들만 영입하며 베스트 11을 짠 결과 '''이적료도 많이 나갔고, 주급도 7천만 파운드(1500억)이나 소비되었다.'''
그렇게 '''비대해진 이적료와 주급 체계'''로 돈을 마구 소비하고, 챔피언스 리그에는 진출하지 못하며 적자가 많아지자 랜디 러너 구단주도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고, 그 결과 오닐 감독은 사임해버렸다. 그 이후 아스톤 빌라는 강등권에서 겨우 탈출하는 팀으로 변했고, 2015-16 시즌에는 강등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2.4. 2010-11 시즌
2010-11 시즌을 앞두고 마틴 오닐 감독이 개막 3일 전 사임하자, 2군 감독으로 지내던 케빈 맥도날드 감독대행이 잠시 팀을 맡게 되었다. 맥도날드 감독대행 체제에서 웨스트 햄과의 홈경기로 개막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3:0으로 승리하며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이 경기에서 밀너는 아스톤빌라에서 고별골을 넣었다. 그리고 밀너는 맨시티로 이적. 맥도날드 감독대행의 정식감독 승격 이야기가 나왔지만 2라운드 자신들이 두 시즌 전 최종전에서 이겨 강등시켰던 승격팀 뉴캐슬에 0:6 대패를 당하며 기세가 꺾였다. 그리고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원정 1차전에서 라피드 빈에게 1:1로 먼저 비겨놓고도 홈에서 펼처진 2차전에서 2:3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같은 상대에 의해 조별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2010년 9월 9일 프랑스 국가대표팀 그리고 리버풀과 올림피크 리옹을 지휘한 명장 제라르 울리에를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다만 울리에 감독이 처음으로 상대팀 감독으로서 안필드에 방문했을 때 필드로 들어서는 통로에서 상대팀에게 위압감을 주는 문구인 '''This is Anfield''' 문구를 손으로 터치하고 들어갔다가 경기도 3-0으로 떡실신하는 바람에 빌라 팬들한테 많이 까였고(물론 리버풀 팬들은 감동했지만...) 사과까지 해야 했다.
울리에 감독 선임 이후 성적이 좋아질 줄 알았지만 울리에가 처음으로 벤치에서 지휘했던 울버햄튼전 2:1 승리 이후 빌라는 리그에서 좀처럼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울버햄튼전 승리 이후 리그 17경기에서 2승7무8패에 그쳤다. 지난 시즌 시즌 막바지까지 챔피언스 리그 자리를 위해 경쟁했던 빌라는 치열한 강등권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빌라의 부진의 원인은 바로 부상이다. 이는 전임 오닐 감독 때에도 매번 지적되었던 문제였다. 오닐 감독은 거의 매 경기 똑같은 선발 라인업을 구축했고, 이는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를 크게 만들었다. [19] 그로인해 오닐 감독 시절 빌라는 매번 후반기 DTD를 시전하며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지 못했다. 더구나 2년 연속 맨시티에 중원의 핵심 배리와 밀너를 내준 시즌 중원의 뎁스는 얇아질 대로 얇아진 상황. 공격진 아그본라허, 카레브, 헤스키의 줄부상에 이어 중원의 핵심 스틸리얀 페트로프까지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밀너의 대체자로 데려왔던 아일랜드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며 최악의 영입이라는 평을 받았다. 22라운드 홈에서 선더랜드에 0:1 패배를 당한 후 빌라는 강등권인 18위까지 떨어지며 위기에 몰렸다.
발등에 불이 튄 아스톤빌라는 결국 선수 영입을 강행했다. 공격진의 줄부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더랜드로부터 대런 벤트를 클럽 레코드인 2,400만 파운드(424억 원)에 영입했고, 리옹으로부터 약 600만 파운드에 장 마쿤을 영입하며 미드필더진을 보강했다. 두 선수를 보강하는데 무려 3,000만 파운드나 쓴 셈. 불과 5개월 전에는 선수 영입은 커녕 팀의 핵심을 팔아넘기며 마틴 오닐 감독을 사임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팀이 강등 위기에 처하자 두 선수를 데려오는데 3,000만 파운드라는 비싼 가격을 지불했다.
벤트는 데뷔전이었던 맨시티와의 안방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빌라를 5경기 만에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위건 원정에서 2:1로 이기며 시즌 첫 2연승에 성공했다.
27라운드까지 14위로 중하위권에 처져있기에 버밍엄 시티(16위)와 모처럼 현재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중이라 적어도 두 팀 더비전은 더 뜨겁게 되었다.
29라운드 볼튼 원정에서 애슐리 영의 페널티킥 실축으로 인해 2:3 역전패를 당했고, 30라운드 지역 라이벌 울버햄튼에게 홈에서 0:1 패배를 당하며 강등권과 승점이 1점 차로 좁혀지며 살얼음판 강등권 싸움을 계속하게 되었다. 31라운드 에버튼 원정에서 다잡은 경기를 놓치며 2:2로 비겼고 강등권 웨스트 햄에 18위에 승점 2점이 앞선 16위를 마크했다. 작년 막바지까지 챔피언스 리그 경쟁하던 팀 맞는지 의문이 든다.
32라운드 상대는 전반기 자신들을 상대로 충격적인 0:6 패배를 안겼던 뉴캐슬. 빌라는 콜린스의 결승골로 뉴캐슬을 1:0으로 이기며 강등권과의 승점차를 5점으로 벌렸다. 33라운드 웨스트 햄 원정은 빌라의 잔류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기. 경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로비 킨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위기에 빠졌지만 대런 벤트의 동점골과 아그본라허의 종료 직전 역전골에 힘입어 중요한 2:1 승리를 거두며 승점 40점을 기록하였다.
시즌 후반기 리버풀 시절부터 심장병을 앓던 울리에 감독의 건강악화로 수석코치 게리 맥칼리스터[20] 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36라운드까지 10승12무14패 승점 42점으로 리그 14위를 기록 중.여전히 16위인 버밍엄 시티와 리그 잔류를 다투고 있다(...) 18위,19위와 승점은 겨우 6점차이기에 마지막 2경기 여부에 따라 강등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남은 2경기 상대가 아스날(원정),리버풀(안방)이다. 하지만 일단 36라운드 18위팀인 블랙풀과의 골득실차가 +10 이라 대량실점만 안하면 잔류는 할듯. 빌라는 아스날 원정에서 2:1로 승리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최종전에서 스튜어트 다우닝의 결승골로 리버풀을 1:0으로 이겼다. 거기에 라이벌 버밍엄시티가 토트넘 원정에서 1:2로 패해 2부리그로 강등되며 아스톤빌라 팬들은 축제 분위기. 최종순위는 12승12무14패 승점 48점으로 9위가 되었다.
시즌 종료 후 알렉스 매클리시가 새로운 사령탑에 선임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매클리시는 강등팀, 그것도 더비 라이벌인 버밍엄 시티의 감독이었다는 점.(...) 때문에 아스톤 빌라 팬들은 이러한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2.5. 2011-12 시즌
아스톤 빌라 팬들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렉스 매클리시 감독이 심장병으로 하차한 제라르 울리에 감독의 후임으로 아스톤 빌라의 새 감독이 되었다. 직전 시즌까지 4년간 버밍엄 시티를 지휘했던 감독이라 팬들의 반발이 심했고, 더구나 그 팀은 강등되었기 때문에 감독의 능력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그리고 재미없고 수비지향적이며 전형적인 잉글랜드식 롱볼 축구를 구사하는 감독이라 팬들은 그의 재미없는 축구를 질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랜디 러너 구단주는 팬들이 반대했던 매클리시를 데려왔는데 이는 자신이 최고의 감독으로 추앙하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추천했기 때문이었다.[21] 또다른 이유는 매클리시의 컵 대회 우승 경력. 직전 시즌 매클리시는 버밍엄에서 강등되기는 했지만 칼링 컵 결승에서 아스날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우승했다. 그리고 빌라에 오려는 마땅한 감독도 없었다. 지출을 줄이면서 유망주를 키워줄 감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매클리시는 빌라에서 일관된 스타일을 사용했다. 그의 전술의 특징은 수비라인을 아주 낮춰둔 후 미들을 거치지 않고 공격진영으로 바로 롱볼을 날리는 형식의 공격. 맥리시에게 미드필더는 그저 5,6,번째 수비수역할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롱볼을 받아줄 타겟맨도 없는데 롱볼을 남발하는 것이다. 에밀 헤스키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나이가 들어 풀타임은 무리였고, 피지컬도 예전 전성기의 헤스키 수준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 빌라의 영웅 벤트는 스코어링 능력을 제외하면 활동량이 준수하지도, 발이 아주 빠르지도, 몸싸움이 강하지도 않았다. 매클리시의 일관된 롱볼은 빌라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는 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있었지만 일관된 전술만을 고집하며 팬들로부터 엄청난 원성을 샀다.
오닐 못지 않게 매클리시의 스펜딩도 실패작에 가까웠다. 맨시티에서 셰이 기븐, 토트넘에서 저메인 제나스를 임대해오고 앨런 허튼을 영입했으며, 위건의 에이스 샤를 은조그비아까지 데려왔다. 이적료 총합으로 약 20m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들을 데려오는데 사용한 주급은 연봉으로 따지면 200억이 가까울 정도로 고액 주급이었다. 셰이 기븐은 과거 뉴캐슬 시절과 같은 폼이 나오지 않았고, 앨런 허튼은 빌라 역사상 최악의 풀백이 되었다. 그리고 제나스는 부상으로 얼마 쓰지도 못했고, 주급도 고스란히 지불했다. 은조그비아의 스타일은 롱볼 위주의 매클리시 전술에 전혀 맞지 않아 불협화음을 연출했다.
11-12 시즌 다소 밀리는 경향이 있긴 해도 중반부까진 중위권을 유지했으나 후기에 갈수록 하위권으로 쳐졌다. 36차전까지 리그 15위를 지켰지만 강등권인 18위와 겨우 3점차라서 남은 2경기 여부에 따라 강등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남은 2경기 상대들이 만만치 않은데 토트넘 핫스퍼와 노리치 시티 경기. 그나마 리그 잔류를 확실히 지켜내서 좀 여유롭게 경기를 하게될 노리치 시티는 그렇다쳐도 3위권 수성을 위하여 반드시 2경기를 이겨야하는 토트넘전이 고비다. 그리고 다른 강등권 탈출에 총력을 다할 팀들의 경기 여부도 봐야한다. 그리고 토트넘에게 1:1로 비기면서 올 시즌은 가까스로 리그 잔류를 해냈다. 마지막 경기인 노리치 시티에게 져도 최소한 17위를 지킬 수 있는데 18위 볼턴이 마지막 경기를 이겨도 같은 38점이지만 아스톤 빌라가 14점이나 골득에서 앞서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38차전 노리치 시티전은 0-2로 졌지만 져도 리그 잔류는 확실시 되었기에 상관없었다. 최종 순위는 7승(...)17무14패 승점 38점 16위. 강등권 볼튼과 승점 2점 차이로 간신히 잔류했다. 마지막 10경기에서 1승도 없이 5무5패로 중위권에서 2부리그 강등권까지 떨어질뻔한 부진을 물어 최종전 다음날 매클리시 감독을 전격 해임하고 바로 노리치 시티를 승격시키고 12위로 잔류시킨 폴 램버트 감독을 2012년 6월 새 감독으로 계약했다.
매클리시 하의 아스톤빌라는 불명예 기록을 여러 가지 세웠다. 아스톤빌라의 EPL 최소 승점(38경기 38승점) 기록을 갈아치웠고, 최소 승리 기록도 역시 경신했다(7승). 그리고 최악의 홈경기 성적까지(4승7무8패 19경기 승점 19점)... 그리고 코너킥으로 득점하지 못한 유일한 팀. 여러 가지로 안습한 시즌. 원정에서 6번 밖에 지지 않아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강등이었다.
'''하지만 2011-12 시즌의 이러한 불명예 기록은 2015-16 시즌 빌라가 강등당하며 모조리 경신되었다.'''
2.6. 2012-13 시즌
2012-13 시즌도 전번과 똑같은 아슬아슬한 강등권 탈출을 이어나가고 있다. 11차전까지 겨우 2승을 거두며 2승 3무 5패로 17위를 거두면서 전번 시즌 말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나마 퀸즈파크,사우스햄튼,레딩이 버티고 있는 강등권이 든든하지만(...) 18위 레딩과 승점차는 겨우 3점이라 마음놓을 처지도 아니다. 11차전 안방경기 맨유전에서 전반에 2골을 넣으며 2-0으로 앞서가며 전반을 끝내 모처럼 대어를 잡나 했더니만 후반 3골을 실점하면서 2-3으로 역전패당했다. 결국 18위로 강등권으로 추락하면서 레딩,퀸즈파크,사우스햄튼과 같이 강등권 탈출전을 벌일 형편이다. 12차전 아스날과 안방경기에서 0-0으로 비기기도 했으나 그 다음 맨시티 원정에선 0-5로 두들겨 맞았다. 그나마 14차전 레딩과의 안방경기를 1-0으로 이기면서 17위로 오르긴 했지만 18위와 2점차라서 강등권 탈출에 총력을 다할 판국. 이후 17라운드 리버풀 원정에서 뜬금없이 3:1 완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반전하는가 했더니만....18라운드 첼시 원정에서 8:0 역대급 대패를 당했다(...) 이후 이어진 토트넘과 위건과의 홈경기에서도 4:0,3:0 패배를 당하며 3경기 동안 무득점 15실점이라는 엄청난 부진을 보여주고있다.
2013년 새해 경기에서 스완지 시티랑 2-2로 비겨서 일단 강등권을 벗어났지만 단 1점차라서 언제라도 강등당할지도 모를 위기...
1월 8일에 열린 풋볼 리그 컵인 캐피탈 원 컵 4강전에서 리그 2(4부리그)브래드포드 시티 원정에서 1-3으로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파란을 일으킨 브래드포드가 위건 애슬레틱, 아스날 FC까지 이기며 4강까지 올라온 팀이긴 하지만.
1월 23일에 열린 캐피탈 원 컵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브래드포드를 2대1로 이겼지만, 총합스코어에서 4대3으로 패배해 브래드포드가 4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컵 결승에 오르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였다. 지못미
1월 12일에 열린 리그 22차전에선 강등권이던 사우스햄튼에게 0-1로 패하면서 18위로 추락했다. 19일에 있을 23차전 상대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이라 험난한 예정이다. 2연패를 당하면서 상승세가 꺾였지만 그래도 리그 7~8위를 지키는 알비온 원정경기이라 고전이 예상되었는데 2:2로 비겨 일단 17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1월 25일에 열린 FA 컵 32강전에서도 풋볼 리그 챔피언쉽의 밀월에게 1:2로 역전패하면서 시즌 컵 대회는 일찌감치 막을 내렸다. 두 컵 대회 모두 하위리그팀에게 덜미를 잡혔고 리그도 강등권 탈출에 총력을 다할 판국.
FA 컵 탈락 직후 강등권 라이벌 뉴캐슬에게 홈에서 1-2로 석패하며 뉴캐슬에게 원정 첫승을 선사했다. 이후 에버튼 원정에서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겼는데, 성과라면 성과지만 1-3으로 이기고 있다가 90분 동점골을 얻어맞았다는 점에서 내상이 있었다. 26라운드에서 웨스트 햄을 2-1로 꺾고 분위기를 추스리나 했지만 카소를라와 윌셔가 맹활약한 아스날에게 1-2로 패하며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27라운드 현재의 득실차 -26은 프리미어 리그 팀들 중 최악.
28차전에선 리그 2위 맨시티에게 선전했지만 아쉬운 0-1 패배를 당했다. 그나마 29차전 레딩을 이기며 모처럼 17위로 뛰어올랐는데 30차전이 바로 QPR과의 안방경기인데 그야말로 강등탈출 혈투가 기다릴 듯. 그리고 혈투대로 3:2로 진땀승으로 이겼다. 하지만 위건 애슬레틱도 30차전을 이기면서 17위로 뛰어올랐고 이 뒤로 줄곧 강등권 탈출을 벌이고 있다가 35차전에 선더랜드를 상대로 안방에서 6-1 대승을 거두고 모처럼 16위로 올라섰다. 18위 위건과 5점 차이지만 15위 선더랜드도 37점이고 위건이 1경기를 덜 치룬 상태라서 아직은 마음놓을 상황이 아니다. 36차전 노리치 시티 원정에서 1-2로 이기면서 일단 1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다만 37차전이 첼시, 그리고 38차전 마지막이 위건과의 경기이다. 첼시에게 패배하고 위건을 상대하게 된다면 막판까지 피튀기는 잔류 싸움을 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결국 첼시전에서 프랭크 램파드에게 두 골을 허용하며 통한의 1-2 역전패를 당해 잠시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으나 위건이 아스날에게 1-4로 대패하면서 강등이 결정되었기에 최종 라운드 결과에 관계없이 잔류를 확정지었다.
2.7. 2013-14 시즌
시즌 개막전에서 아스날을 원정에서 '''3-1로 이기면서''' 이변을 보여주는가 했지만 그 다음 첼시,리버풀,뉴캐슬에게 연이은 리그 3연패를 당하면서 역시나라는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 뒤로 맨시티를 안방에서 3-2로 이기는가 했더니 다시 연패에 빠지며 부침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도 일단 2014년 2월까지 7승 7무 12패로 12위를 유지하며 두 시즌 연속 강등권에서 헤매이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후로 부진하면서 35차전까지 9승 8무 18패를 기록하며 16위로 추락했다.강등권과 겨우 4점차로 남은 3경기 여부에 따라 강등당할 수도 있다. 다음 36차전은 같은 순위지만 골득실에 앞선 헐시티와의 홈경기라 이길만하지만 다른 2경기는 3위 맨시티 원정,6위 토트넘 핫스퍼 원정이라 고전이 예상된다. 그래도 강등팀이 빨리 확정된 덕분에 최종 두 경기를 모두 지고도 15위로 잔류를 확정지었다.
리그 컵에선 토트넘 핫스퍼에게 0-4, FA 컵에선 3부리그 셰필드 유나이티드에게 1-2로 패하며 둘다 64강에서 일찌기 탈락했다.
이렇게 2010년대 들어서 강등을 겨우 모면하는 수준에 처해있고 랜디 러너 구단주가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2014년 들어서 구단을 팔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리고 5월 들어서 랜디 러너 스스로도 구단을 팔 것이라는 태도를 밝혀서 8년만에 새로운 구단주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2.8. 2014-15 시즌
여름이적시장에서 필리페 센데로스와 조 콜, 알리 시소코와 키에런 리차드슨, 카를로스 산체스를 영입하고 톰 클레버리를 맨유에서 임대했다. 그리고 빌라 유스 출신의 마크 올브라이튼과 나단 델포네소를 방출했다.
시작은 정말 좋았다. 개막전인 스토크 원정에서 바이만의 결승골로 1-0 신승을 거둔데 이어 2라운드 뉴캐슬전 무승부 후 3라운드 헐시티와의 홈경기 2-1 승리에 4라운드 리버풀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3승1무로 4라운드 기준 2위까지 올랐다. 이 호성적에 힘입어 폴 램버트 감독도 2018년까지 재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DTD 법칙은 무시할 수 없는지 강팀들을 연달아 만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팀 연전 첫 경기인 리버풀전에서 승리한 뒤 아스날-첼시-맨시티-에버튼에 무득점으로 4연패를 당했고 심지어 꼴찌 QPR 원정에서도 무기력하게 0-2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 1-2로 패하며 1967년 이후 47년 만의 리그 6연패를 허용하게 되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주포 크리스티안 벤테케가 장기 부상을 끊고 돌아왔다는 소식.
6연패 후 11라운드 웨스트햄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며 연패를 끊었고 12라운드 소튼과의 홈경기와 13라운드 번리 원정에서 1-1로 비기며 무승행진이 9경기가 되었다. 팰리스 원정에서 1-0으로 이기며 10경기 만에 무승에서 탈출했고, 15라운드 레스터와의 홈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5경기 무패로 11위로 상승, 안정세에 접어드는가 싶었지만
16라운드 웨스트 브롬 원정에서 0-1로 패한 이후로 기나긴 무승의 늪에 다시 빠지기 시작하게 된다. 17라운드 맨유와에 홈경기에서 1-1로 비긴 이후 6경기 연속 무득점의 골 가뭄에 시달리며 허덕이게 되었다. 2015년 1월 기준 리그 '''22경기 11골'''로 유럽 5대 리그 최저 득점률[22] 에, 잉글랜드 1~8부 리그 구단까지 통틀어 가장 적은 골을 기록중. 2014년 10월에는 한 골도 못 넣어서 이달의 골 시상을 못 하기도 했다(...). 그나마 견고한 수비(22경기 25실점, 최소 실점 5위)로 강등권까진 떨어지지 않고 있지만 사태가 심각하다.
프리미어 리그 팀들의 탈락과 재경기가 속출한 FA 컵 4라운드에서는 챔피언쉽 1위 본머스에게 2-1 승리를 거두면서 16강에 안착했다. 1월 이적시장에서 영입한 길의 후반 51분 선취골은 1월 4일 역시 FA 컵 3라운드에서 블랙풀 상대로 1점을 기록한 이래 233분만에 나온 아스톤 빌라의 골이다.
2월 1일 23라운드 아스날전에서는 상술한 견고한 수비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5-0 대패. 지금까지 잉글랜드 최상위 리그 팀 중에서 23라운드 기준 빌라보다 골을 못 넣은 팀이 없을 정도의 역대급 골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24라운드 첼시전에서 전년 12월 20일 이후 처음으로 리그 득점을 올렸으나 1-2 패배, 25라운드 헐시티전에서도 2-0 패하면서 마침내 18위로 내려앉았다. 2014년 12월 7일 15라운드 레스터시티전 이래 10경기째 리그 승전이 없다. 결국 헐시티전 패배 후 빌라는 폴 램버트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다.[23]
램버트 감독의 경질 후 스콧 마샬 코치와 앤디 마샬 골키퍼코치가 공동 임시감독을 맡았으나, 이틀만에 전 토트넘 감독인 팀 셔우드를 새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잘 알려져 있듯 셔우드 감독은 전 시즌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경질 후 토트넘의 구원투수로 나서 좋은 성적을 낸 바 있던 감독이다.[24] 계약기간은 2017-18 시즌까지다.
[image]
FA 컵 4강에 진출한 아스톤빌라 팬들이 매우 기뻐하고 있다
리그는 17위인 가운데 FA 컵은 5라운드에서 레스터시티, 6라운드에서 WBA를 홈에서 격파하며 웸블리에서 열리는 4강에 진출했다. 4강 진출에 성공하자 난입하는 관중들은 마치 누가 보면 FA 컵 우승한 걸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그리고 준결승에서도 리버풀을 2-1로 제치며 11번째이자, 15년만에 결승에 진출했다.[25]
1957년 우승[26] 이후로 58년만에 우승을 노렸으나 아스날에게 0-4로 두들겨맞으면서 참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또한 안습하게도 이번 시즌부터 FA 컵 우승팀의 유럽 대회 진출시 준우승팀에게 부여되던 유로파 리그 티켓이 리그 6위에게로 가는 바람에 FA 컵 준우승을 하고도 유럽 대회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었다.
리그는 셔우드 감독이 벤테케를 살려내며 득점력이 회복되어 강등은 면했지만, 이번 시즌도 17위로 가까스로 강등을 모면한 채 끝냈다.
2.9. 2015-16 시즌
전 시즌 주장이었던 론 블라르가 계약이 결렬되며 팀을 떠났다. 또한 새 시즌 주장을 맡기려던 파비안 델프는 재계약에 서명할 듯 하다가 뒤통수를 치며 바이아웃 800만 파운드에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 버렸고, 주포 크리스티안 벤테케는 3200만 파운드에 리버풀 FC로 떠났다. 각 포지션의 기둥들이 뽑혀나가며 판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할 상황.
물론 여름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을 많이 하긴 했다. 지난 시즌 임대로 와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스콧 싱클레어를 완전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마이카 리차즈(맨시티, 자유영입), 마크 번(노리치, 자유영입), 이드리사 구예(릴, 9m), 조르당 아마비(니스, 9m), 조르당 아예우(로리앙, 9m), 호세 앙헬 크레스포(코르도바,0.5m), 조르당 베레투(낭트, 7m), 루디 게스테드(블랙번, 6m), 아다마 트라오레(바르셀로나 B, 7m), 졸리온 레스콧(WBA, 2m)을 폭풍영입했다. 지난 시즌에 뛰었던 싱클레어를 제외하면 무려 10명의 신규 선수가 들어왔다. 지난 몇 년 동안 빌라의 행보에 비해서 이번에 돈을 많이 썼다.(물론 벤테케와 델프의 이적에 따라 자금이 두둑해진 것도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선수들이 들어오면 팀의 조직력을 갖추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레스콧과 리차즈 빼고 전부 EPL 검증이 되지 않은 선수들.
개막전 승격팀 AFC 본머스 원정에서 이적생 루디 게스테드가 교체 투입된 후 데뷔골을 터뜨린 것이 결승골이 되어 1-0으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개막전 승리 이후 선더랜드와의 2-2 무승부를 제외하곤 8경기에서 7패를 당했고[27] , 9라운드까지 1승1무7패에 그치며 강등권으로 추락하였다. 팀 셔우드 감독의 경질설이 불거졌고 10월 24일에 열리는 스완지 시티와의 리그 10라운드 경기를 통해 그의 경질 여부가 갈리게 되었다.
팀 셔우드 감독은 지난 시즌 토트넘에서처럼 소방수의 역할을 잘 수행해내며 FA 컵 준우승과 프리미어 리그 잔류로 이끌었지만 새로운 선수들을 모아서 한 팀으로 다시 만드는 능력은 부족했고 결국 초보 감독의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10월 24일 펼쳐진 스완지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2-1 역전패를 당하며 최하위로 처지자 팀 셔우드 감독이 경질되었다. 후임 감독으로 전 올랭피크 리옹 감독 레미 가르드가 선임되었다. 새 감독의 첫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홈에서 깜짝 무승부를 거뒀지만 가르드 역시 전임과 달라진 게 없고 2015년 12월 31일까지 1승 5무 13패로 꼴찌가 되었다. 팀의 유망주 잭 그릴리쉬[28] 는 빌라가 대패를 당한 날 밤 나이트에 갔다가 걸려 징계를 당했다. 8월 8일 개막경기인 본머스전을 1-0으로 이겨보고 18경기동안 이겨본 적이 없다! 이렇게 승점 8점이라 암울한 상황. 17위 스완지 시티와 무려 승점 11점 차이가 난다. 강등권에서 벗어나자면 12점 이상 승점이 필요한데 현재 상황에서는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인다. 19라운드를 마친 시점에서 승점 8점 이하를 낸 것은 이번 시즌 아스톤 빌라가 세 번째이다. 이전 두 사례는 선더랜드(2005-06), 더비카운티(2007-08)인데 두 팀 모두 해당 시즌 최소승점 기록을 세우고 강등되었다. 통계상으로도 EPL 출범 이후 첫 강등이 매우 유력해진 상황이다.
2016년 새해 1월 4일 첫 경기인 19위 선더랜드 원정경기에서도 1:3으로 패하며 더 이상 희망이 없다. 20경기 1승, 19경기 연속 무승, 홈경기 무승. 2007-08 시즌 더비 카운티 이후 EPL 최악의 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9위 선더랜드와 승점차도 7점으로 벌어진 상황. 참다못한 서포터들은 경기 후 버스에 타고자 선수단이 나오자 야유와 함께 “당신들에 그 유니폼은 어울리지 않아!”라는 구호를 외치며 비난했다. 그러다가 21차전 홈경기에서 크리스탈 팰리스를 1-0으로 이기며 다섯달만에 리그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후 22라운드에서 선두 레스터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1-1로 비겼고, 23라운드 웨스트 브롬위치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며 시즌 처음으로 3경기 무패에 성공했다(...)
강등이 유력한 가운데 빌라는 겨울이적시장에서 단 한 명의 선수도 영입하지 못했다. 로마의 세이두 둠비아에게 접근했지만 뉴캐슬로 임대이적했고, 보르도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리그앙에서 도움 순위 2위를 기록하던 와비 카즈리도 선덜랜드로 이적했다. 둘 다 강등경쟁팀으로 이적한 셈. 풀백 마티유 드뷔시는 보르도를 택했고, 첼시 공격수 로익 레미 영입도 실패했다. 마지막 날까지 추진되던 라치오 미드필더 라벨 모리슨 영입도 최종 협상 과정에서 라치오 측이 “잊어버려라”라는 말을 남기고 최종 결렬됐다. 아무래도 강등이 유력한 팀에 가고자 하는 선수가 없는 듯 하다.
겨울이적시장이 마감한 후 치뤄진 첫 경기인 24라운드 웨스트 햄 원정에서 무기력하게 0-2로 패했다. 이에 분노한 빌라 팬들은 랜디 러너 구단주에 대한 불만을 노래로 표현했다. ## 14경기 남은 상황에서 잔류권인 17위 노리치와의 승점차는 10점. 19위 선덜랜드와의 격차도 6점이나 된다. 이변이 없는한 강등 확정.
25라운드에서 함께 강등권 싸움을 하는 노리치를 2:0으로 잡고 리그 3승째를 챙겼다. 가브리엘 아그본라허가 모처럼 득점을 기록해 주는 등 빌라 팬들에게 잠시 예전과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해 주기도 했으나....
26라운드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0-6'''으로 패했다. 이제 풋볼 리그 챔피언십행이 '''더더욱 유력시되었다'''. 대충 통계상 강등을 면하는 세이프 존이 대략 승점 40점 [29]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목표로 한다면 26라운드 기준으로 앞으로 남은 12경기에서 '''24점'''을 뽑아야 한다 . 남은 경기들에서 거의 우승 팀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지 않으면 사실상 탈출이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이고, 강등권 탈출도 아닌 19위인 선덜랜드와의 승점차만 7점이다.
리버풀전 대패 이후, 연습경기 삼아 아스톤 빌라 1군과 아스톤 빌라 리저브 팀[30] 이 자체경기를 가졌는데 '''리저브팀이 3-0으로 1군을 압살했다'''고 한다. 아스톤 빌라의 현주소를 잘보여주는 경기가 될 듯 하다. 더군다나 1군팀에는 브래드 구잔, 스캇 싱클레어, 앨런 허튼, 이드리사 게예, 키어런 클락 그리고 애슐리 웨스트우드 등 사실상 '''1군 주전 멤버들'''이었고 나머지 1군 주전들 중에는 조던 아예우와 레안드로 바쿠나만이 리저브팀으로 뛰었던 상황이라고 한다.
리버풀에 0-6 대패를 당한 빌라는 27라운드 스토크 시티 원정과 28라운드 에버튼과의 홈경기에서 각각 1-2, 1-3으로 패했고 29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예상대로 0-4 대패를 당하며 4연패로 2부리그에 한발자국 더 가까워졌다. 29라운드를 마친 현재 성적은 3승7무19패, 승점 16점. 게다가 잔류 마지노선 17위 선덜랜드가 사우스햄튼 원정에서 승점 1점을 추가하며 17위와 승점차가 9점으로 벌어졌다. 선덜랜드가 추가시간에 동점골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11점 차로 벌어질 수 있었다. 11점 차나 9점 차나 빌라의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극적인 반전으로 잔류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시즌 종료까지 9경기만 남은 상황에서 정말로 기적 of 기적 아니면 프리미어 리그 잔류는 언감생심이다. [31]
토트넘과의 30라운드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2-0으로 패했다. 골대를 3번이나 맞추며 득점에도 실패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해볼만 했던 스완지 원정에서도 0:1로 패하며 이제는 강등이 코앞까지 왔다.
결국 빌라의 보드진도 이번 시즌 잔류는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가르드 감독을 경질시키고 14-15 시즌 레스터의 감독이었던 나이젤 피어슨을 감독으로 선임해 챔피언십에서 맞을 다음 시즌 준비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지시각으로 3월 29일 레미 가르드 감독이 팀을 떠났다. #
가르드 감독이 떠난 뒤 홈에서 열린 첼시와의 31라운드에서 루벤 로프터스 치크에게 선제골을 실점했고, 그 뒤로도 알렉산드르 파투에게 첼시에서의 데뷔골을 허용했으며, 페드로 로드리게스에게 쐐기 2골을 먹히며 0:4로 떡실신 당했다. 그리고 17위 노리치가 뉴캐슬과의 단두대매치에서 3-2로 이김으로써 승점차가 15점으로 벌어졌다. 이젠 1패만 당해도 혹은 노리치가 1승만 추가해도 강등 확정이다.[32]
컵 대회에서는 리그 컵은 16강까지 올라가서 사우스햄튼에게 1-2로 패해 탈락했다. FA 컵은 2016년 1월 9일에 4부 리그인 위컴 원더러스랑 64강전을 치뤘는데 1-1로 비기며 재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재경기에서는 2-0으로 승리하고 32강에 올라갔지만, 맨체스터 시티를 만나 0-4로 대패, 탈락했다.
4월 10일 본머스에 2:1로 패하면서 남은 5경기를 전승하고 노리치가 전패를 하더라도 득실을 따져봐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
하지만 4월 17일, 맨유와의 올드 트래포드 원정 경기에서 졸전을 펼친 맨유 상대로 여러 차례 위협적인 경기력을 보이고도(...) 0:1로 패하면서 남은 경기와 상관 없이 풋볼리그 챔피언십(2부리그) 강등이 확정되었다. 팀의 첫 강등이자 역대 최악의 성적. 강등된 바로 그 날에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아그본라허가 파티를 열어 여자들과 질척하게 노는 사진이 이후 유포되며 처참함을 배가했다.
아스톤 빌라의 강등 순위표를 기다리는 버밍엄 시티 팬들이 30초 동안 기를 모으고 있다
세컨드 시티 더비로 알려진 상대 버밍엄 시티 FC팬들은 아스톤 빌라가 강등되자 환호성을 크게 지르며 기뻐했다.
36라운드는 왓포드 원정에 나서 모처럼 1-2로 승리하나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후반 종료 직전에 나온 퇴장 이후 로스 타임에만 상대 공격수 디니에게 두 골을 헌납하며 3-2로 역전패.
그나마 뉴캐슬전에서 0:0으로 비기며 '''뉴캐슬을 2부로 끌어내리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33] 사실 이 경기에서도 빌라가 90분 동안 슈팅을 2개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등 내용 면에서는 완전히 밀렸는데, 만약 이 경기도 졌었으면 아스톤 빌라는 12연패로 팀 역사상 최다 연패를 갱신할 뻔했다.
설상가상으로 최종전 상대는 '''아스날'''. 최종전 아스날 원정에서 예상대로 0:4 대패, 아스날이 라이벌 토트넘을 3위로 끌어내리고 11년 만에 준우승을 이루게 하는 제물이 되었다.
3승8무27패, 승점 17점 27득점 76실점이라는 최악의 기록으로 마감하였다.
2016년 5월 18일, 중국 복합기업인 리콘그룹의 오너 샤졘통(夏建统, Tony Xia)에게 아스톤 빌라가 매각되었음이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샤 구단주는 오랜기간 아스톤 빌라의 팬이었고 옥스포드 유학시절부터 축구클럽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을 해왔으며 현재도 취미운동 삼아서 축구를 즐긴다고 한다. 구단주에 취임하면서 우선은 프리미어 리그로의 복귀 그리고 유럽 대항전 진출[34] 과 중국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상승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10. 2016-17 시즌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이 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2부 리그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감독이 2명으로 늘었다.
디 마테오 부임 후 첫 사이닝으로 본머스 주장인 토미 엘픽을 영입했다. 이외에도 풀럼의 로스 맥코맥에 £12m을, 브리스톨 시티의 코지아에 £15m을 쓰는 등 여름 이적시장에 30m 이상의 순지출로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카를레스 힐은 한 시즌동안 데포르티보로의 임대가 결정됐다. 이드리샤 게예는 에버튼으로, 스콧 싱클레어는 셀틱으로 떠났다. 맨유 유스출신으로 지난 두 시즌 베로나에서 골키퍼 장갑을 꼈던 골리니를 영입했고, 이에 구잔은 미들즈브러와 계약했다. 빌라의 오랜 수비유망주였지만 성장이 더뎠던 키어런 클락은 바이아웃을 지급한 뉴캐슬로 이적했다. 졸리온 레스콧은 AEK 아테네로 이적했다.
조르당 아예우는 지난 시즌 강등 이후로 타팀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지만, 16-17 시즌 챔피언십으로 강등된 아스톤 빌라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가브리엘 아그본라허는 지난 시즌 일련의 사건 이후 구단과 팬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여전히 엔트리에 포함되어 있으나, 그 이후의 이미지 악화 문제도 있고 자기관리 부실로 인한 경기력 저하 등으로 인해 주전 복귀는 쉽지 않을 상황이다.
한편, 아스톤 빌라에서 활약하다 지난 2012년 백혈병에 걸려 선수 생활을 중단했던 스틸리얀 페트로프가 프리 시즌에서 잠시 활약하기도 했는데 이후 계약에 어려움을 겪으며 최종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35]
개막 후 중하위권에 처져 시즌을 시작했다. 11라운드 프레스턴 원정에서 2-0으로 패배하며 1승 7무 3패 19위에 머물자 디 마테오 감독을 10월 3일 경질하였다. 3부 리그 강등권과의 격차는 불과 승점 2점으로 생존왕 아스톤 빌라가 강등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잭 그릴리쉬가 6주짜리 부상을 끊으면서 초비상이 걸렸다.
후임으로는 지난 시즌 헐 시티 AFC의 감독이자 승격 전도사 스티브 브루스가 부임했다. 12라운드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기면서 불안한 출발을 했으나, 13라운드에서 레딩 FC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어 이번 시즌 팀의 두번째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같이 강등당했던 노리치 시티와 뉴캐슬 유나이티드 FC가 챔피언십 선두 경쟁 중인 것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갈 길이 험난하다.
그리고 14라운드 풀럼과의 경기에서 조나탄 코지아의 후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여 모처럼 2연승에 성공했다.
디 마테오 감독이 이끌던 시즌 초반에 많이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2부 리그가 워낙 평준화가 심한 만큼, 14R 종료 시점에서 16위임에도 승격 플레이오프권인 6위 브리스틀 시티와의 승점 차는 의외로 단 '''6점'''. 스티브 브루스 감독 부임 이후의 3경기에서 2승 1무의 호성적을 거둔 만큼, 앞으로의 리그 일정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반등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단, 저조한 득점력으로 인해 무승부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고 있고, 그로 인해 승점이 깎이는 점이 문제다. 14R 종료 시점에서 패한 경기는 3경기 뿐이지만(리그 선두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 같다!) 뉴캐슬의 경우는 14경기 중에 무승부는 1회밖에 하지 않았다. [36]
15라운드에서 열리는 세컨드 시티 더비가 팀의 이후 분위기를 상당히 좌우하게 될 전망. 아스톤 빌라가 EPL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15-16 시즌에도 EFL 컵에서 버밍엄 시티를 만났을 때는 1:0으로 승리했던 바가 있다. 다만 이번 시즌에는 리그 초반의 모습만으로 보면 버밍엄 시티가 아스톤 빌라보다 순항하고 있다. 1-1 무승부로 챔피언십에서의 첫 세컨드 시티 더비가 끝났다.
무패 행진은 12월 3일 리즈에게 2-0으로 패배할 때까지 7경기 동안 계속되어 이 당시에는 11위까지 순위를 올렸다. 12월에도 약팀들을 잡아내며 9위로 2016년을 마쳤다.
그러나 2017년 들어 충격의 7경기 무승(1무 6패)으로 31라운드 기준 16위로 추락하며 승격의 희망도 희박해지고 있다. 승격 플레이오프권인 6위 셰필드 웬즈데이와는 19점 차이가, 강등권인 22위 위건과는 7점 차이가 난다. 결국 겨울 이적 시장에서 팀의 주요 선수들인 뤼디 제스테드(보로)와 조던 아이유(스완지), 그리고 키어런 웨스트우드(번리)를 모두 프리미어 리그 팀으로 이적시켜야 했다. 한편 이 선수들의 공백은 챔피언십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선수들로 메웠는데 특히 브렌트포드에서 득점왕 경쟁중이었던 스콧 호건에게 £11m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41라운드 기준 승점 58점으로 11위에 랭크, 5경기를 남긴 채 6위와 11점 차이로 챔피언십 잔류가 유력하다. 시즌 최종전에서는 우승을 위해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브라이튼에게 10명인 상태에서 89분 그릴리시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안기며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렸고, 작년에는 물고 늘어져 강등길을 함께한 뉴캐슬에게 극적인 역전 우승 컵을 안겨 주었다[37] . 최종 성적은 16승 14무 16패, 승점 62, 득실차 -1로 13위를 기록해 하위권 테이블(13~24위)에서 시즌을 마쳤다.
EFL 컵에서는 1라운드 루튼 타운 FC에 1:3으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FA 컵 역시 토트넘에게 2-0으로 지며 3라운드 광탈.
2.11. 2017-18 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첼시의 전설 존 테리를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여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하였고, 글렌 웰런과 크리스토페 삼바, 아메드 엘모하마디, 로버트 스노드그라스 (임대) 등 프리미어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을 영입하였다. 또한 토트넘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던 유망주인 조쉬 오노마또한 임대로 영입하였다.
20라운드 기준 10승 6무 4패로 5위에 위치해있다. 베테랑들 영입 효과로 수비가 안정되고 저번시즌보다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점점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고있다.
겨울이적 시장에서 출장기회가 적었던 센터백 토니엘픽을 같은 리그의 레딩으로 임대보내고, 맨유에서 센터백 튀앙제브를 임대해 왔다. 또 29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승점 1점 차이로 2위인 더비카운티를 턱밑에서 위협하고 있으며 최근 5경기 전승으로 기세가 아주 좋다.
2018년 4월 14일 기준으로 시즌 3경기 남겨둔 상황에서 4위를 기록하고있으며 2위부터 4위까지 승점이 2점차밖에 나지않아 아스톤 빌라가 순위를 2위로 끌어올린다면 프리미어리그로 자동승격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2위 카디프와 3위 풀럼을 결국 따라잡지 못하며 자동 승격은 좌절되었고 4위를 확정지어 플레이오프를 통한 승격을 노린다. 4강 상대는 5위 미들즈브러.
5월 12일에 열린 4강 1차전 보로 원정경기를 코너킥 상황에서의 예디낙의 헤더로 0-1로 승리했다. 그리고 한국시간 5월 16일 2차전 홈경기를 0-0 무승부로 끝내며 플레이 오프 결승에 올라갔다. 5월 27일 웸블리에서 열릴 플레이오프 결승 상대는 이번 시즌 빌라의 천적인 풀럼으로 결정됐다.
이번 시즌 풀럼과의 두 차례 리그 경기에서 두 번 다 패배를 기록한 빌라였는데 역시나 결승전에서 풀럼의 케어니에게 득점을 허용해 1-0으로 패했고, 그 결과 다음 시즌도 챔피언십에서 뛰게 되었다.
승격 실패에 팀 분위기도 엉망이 되었는데 지역지인 영국 '버밍엄 메일'은 5월 29일(이하 한국시간) "애스턴 빌라는 선수 판매와 연봉 삭감으로 4,000만 파운드(한화 약 547억 원)에서 4,500만 파운드(한화 약 600억 원) 가량을 벌어들여야 재정적 페어플레이 룰 위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강등 이후에도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유했던 선수 다수를 그대로 데리고 있었던 아스톤 빌라였기에 강등으로 수입이 감소[38] 하는 위험성이 있었다. 보통 이럴 경우 강등당하면 주축 선수들을 파는게 흔하지만, 빌라는 가브리엘 아그본라허, 앨런 허튼같은 선수들을 그대로 보유하면서 1부리그 수준급으로 돈을 주었던 터에 이번 시즌에는 존 테리 같은 비싼 자유계약 선수도 영입했다. 그럼에도 승격을 실패하면서 존 테리는 더 이상 계약 연장하지 않는다고 떠났다. [39]
2.12. 2018-19 시즌
개막 후 무재배를 많이 하며 지지부진한 성적으로 초반부터 승격권과 벌어지려는 행보를 보이자 10월 3일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전격 경질되고 1주일 뒤 딘 스미스가 후임으로 오게 된다. 스미스의 데뷔전인 스완지와의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었지만 노리치와 QPR 원정에서 패배하며 16위까지 내려갔다. 11월 3연승으로 반등하는 듯 했지만 불안한 수비로 인해 좀처럼 승리를 얻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홈경기에서 난타전 끝에 5-5 무승부를 한 것과 리즈와의 홈경기에서 2-0으로 앞서다 2-3으로 뒤집힌 경기. 에이스 잭 그릴리쉬를 부상으로 잃고 박싱데이 이후에는 리그 10경기에서 단 1경기만 승리를 거뒀고 그 1승도 꼴찌 입스위치 타운과의 홈경기에서 2-1로 신승을 거둔 경기였다. 승격후보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0-3으로 지다 3-3으로 비겼던 짜릿한 경기도 있었지만 하위권인 위건에 3-0으로 털리고 레딩에 0-0으로 비기는 등 무기력한 경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2월을 마친 시점에선 10승15무9패에 순위는 11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빌라는 꿈도 희망도 없는 듯 했고 체념하면서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릴리쉬가 부상에서 돌아오자마자 빌라는 거짓말같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릴리쉬의 복귀전이었던 3월 첫 경기인 홈에서의 더비 카운티전에서 그릴리쉬가 복귀골을 넣은 가운데 4-0 대승을 거두더니 놀랍게도 그 경기를 시작으로 10경기를 파죽지세로 모두 승리했다. 이 기간 그릴리쉬는 9경기에서 4골 2도움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빌라의 순위는 11위에서 단숨에 5위까지 뛰어올랐고 극적으로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웨스트 미들랜즈 라이벌 웨스트 브롬위치와 플레이오프 준결승을 치렀다. 1차전 홈에서 드와이트 게일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30분 이후 코너 아우리한과 아브라함의 결승골로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2차전 원정에서는 크레이그 도슨에게 실점하며 0-1로 지며 합계 2-2 동점으로 연장으로 이어졌고 연장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며 승부차기로 돌입했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하며 5월 27일 3위 리즈 유나이티드를 꺾은 6위 더비 카운티와 웸블리에서 마지막 프리미어리그 티켓의 주인공을 가리게 되었다. 더비카운티와의 경기에서 전반 44분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준 엘 가지의 선취골과, 59분 더비카운티 골키퍼의 키핑 미스를 놓치지 않고, 존 맥긴이 추가골을 넣었다. 80분 잭 매리엇의 추격골과 7분이라는 긴 추가시간을 뚫고, 결국 3시즌만에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하게 됐다.
2.13. 2019-20 시즌
19-20시즌 등번호가 확정됐다.
6라운드까지 1승 1무 4패로 강등권인 18위까지 추락했는데 에버튼과 홈경기를 2-0으로 이긴 것이 유일한 승리였다.
이후 노리치 시티와 원정경기에서 웨슬리와 그릴리쉬, 엘 가지의 활약으로 무려 5-1로 대승을 거뒀다.
리그컵 준결승에서 리그 3위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합계 3-2로 이기며 2014-15 시즌 FA컵 준우승 이후 5년 만에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랐다. 리그컵 결승은 2009-10 시즌 이후 10년 만의 일.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와의 결승전에서 10년 전 맨유와의 결승전과 같은 1:2 스코어로 준우승을 기록했다.
한편 리그에서는 마지막 라운드까지 왓포드 FC, AFC 본머스와 함께 잔류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며, 끝내 38라운드에서 웨스트햄에게 1 : 1 로 무승부를 거두면서 극적인 잔류를 확정지어 3팀 중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승자가 되었다. 리그 재개 이후 34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전 까지 승리를 따내지 못해 강등이 유력시해 보였으나, 팰리스전 이후로 4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며 승점을 끌어올리며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40]
2.14. 2020-21 시즌
극적으로 잔류를 확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딘 스미스가 과연 다음 시즌에도 감독직을 수행할지는 불분명한 상태. 포르투갈 언론에서 딘 스미스가 잔류를 확정지을 경우에도 경질될 것이고 브루누 라지가 부임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여전히 자리가 위태로운 상태이다. 또한 팀의 핵심 선수 잭 그릴리쉬 역시 딘 스미스의 인터뷰에서 확답을 못하겠다는 반응이 나온 것으로 보아 다음 시즌 빌라에 잔류할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잔류를 확정지으면서 다음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에 남게 되었으며, 때문에 선수 영입 역시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선수 보강에 앞서 레스터 시티 FC의 감독직을 수행했던 것으로도 유명한 크레이그 셰익스피어를 수석 코치로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존 테리가 떠날 가능성이 잠깐 제기되기도 했으나 존 테리 역시 잔류를 결정하면서 리처드 오켈리[41] , 존 테리, 크레이그 셰익스피어 총 3명의 수석 코치 체제로 갖춰지게 된다.
EFL 챔피언십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인 노팅엄 포레스트 FC의 매티 캐시와 브렌트포드 FC의 올리 왓킨스 영입에 성공했다.
프리미어리그 일정이 발표되었으나, 1라운드 상대팀인 맨체스터 시티 FC가 유럽 대항전으로 인한 휴식을 부여받으면서 빌라 역시 1라운드가 연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빌라의 공식 첫 경기는 9월 15일에 있는 버턴 앨비언 FC와의 EFL컵이 될 예정이다.
캐시, 왓킨스에 이어 아스날 FC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골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와 첼시 FC의 유스 시절 많은 주목을 받았던 윙어인 베르트랑 트라오레역시 영입하면서 순조롭게 보강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팀의 주축 선수이자 그동안 이적설에 휩싸였던 두 선수인 잭 그릴리쉬와 타이론 밍스의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기존 선수 지키기에도 성공, 리빌딩이 점점 잘되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을 통해 다시 중상위권 복귀도 가능한 매우 기대되는 시즌이라 볼수 있다.
20-21 시즌 초반 기세가 좋다. 프리미어리그 3연승을 달리며 4라운드가 끝난 현재 에버튼 FC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으며, 4라운드 기준 전승 무패와 최소 실점과 함께 최다 득실차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디펜딩 챔피언 리버풀 FC를 7-2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꺾으며 빌라팬들에게는 물론, 프리미어리그 팬들에게 지난 시즌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줄 것을 예고하고 있는 중이다. 이후로도 아스날을 원정에서 3-0으로 완파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dtd가 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박싱데이에 진입해서도 첼시 원정에서 무를 캐고 맨유한테 좋은 경기력 끝에 1-2로 석패하며, 약팀들은 다 잡아내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며 저번시즌 강등권이었던 팀이 '''유럽대항전 진출 경쟁을 하고 있다.''' 뎁스가 꽤 깊어서 박싱데이임에도 잘 버티고 있으며, 저번 시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시즌 중반 어이없게 승점을 잃었던 번리 전과 브라이튼 전이 더 아쉽게 느껴질듯. 시즌 중반 선수단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며 약 3주를 쉬었다. 복귀 후 맨시티-뉴캐슬-번리-사우스햄튼-웨스트햄을 상대로 2승3패를 거두며 12월 3승2무를 거뒀던 상승세가 다소 꺾인 모습이지만 아직 유럽대항전 진출 가능성은 충분한 상황이다.
3. 1군 선수단
4. 기타
- 지금은 강등되어 몰락했다가 3년만에 EPL에 복귀한 팀이지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팀이다.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횟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FC, 아스날 FC, 에버튼 FC에 이어 5위이긴 하지만 우승해본 역사가 꽤 오래전 일이다.[42]
- 1874년 빌라 크로스 웨슬리언 성공회 교회 팀으로 창단된 이래 1부 리그와 FA 컵에서 7번이나 우승했다. 물론 1800년대와 1900년대 초반의 업적이 대부분이지만... 1980-81 시즌에 풋볼 리그 1부[43] 우승을 차지했고, 1981-82 시즌에 유러피언 컵[44] 에서 우승[45][46] 을 차지했을 정도로 화려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팀이다. 연고지도 영국 제2의 도시인 버밍엄이라 빅 마켓과 대단한 역사, 충성스러운 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도 여전하다.
- 명실상부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이지만, 시즌 우승팀중에서 당시 리그 성적이 가장 낮은 팀 또한 아스톤 빌라다.(...) 1981-82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할때, 리그에서는 11위로 마쳤는데, 역대 우승팀들이 우승한 시즌에 리그에서 10위권 밖으로 나간것은 현재 바이에른 뮌헨[47] 과 아스톤 빌라밖에 없다.
- 버밍엄 시티 FC와는 세컨드 시티 더비로 알려진 라이벌 경기가 유명하다. 다만 아스톤 빌라가 프리미어 리그 붙박이인 반면 버밍엄이 승격과 강등을 왔다갔다해서 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 아스톤 빌라가 15-16 시즌 강등되면서 풋볼 리그 챔피언십에서 볼수 있게 됐다. 다만 이후 18-19 시즌에서 승격해서 다시 당분간은 볼수 없게 되었다.
- 윌리엄 왕자가 아스톤 빌라의 열렬한 팬이다. 아스톤 빌라 경기 중계중 관중석에서 가족과 함께 응원을 온 윌리엄 왕자 가족을 카메라가 잡아주는 장면을 어렵지않게 볼 수 있다. [48] 2019-20 시즌 노리치 원정에서도 윌리엄 왕자 가족이 캐로우 로드에 가서 아스톤 빌라를 응원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 미국배우 톰 행크스, 영국 전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이 서포트하는 팀이다. 그래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은퇴했을 때 캐머런 총리가 트위터로 "그의 은퇴로 인해 내가 응원하고 있는 아스톤빌라가 조금 더 편해지기를 바란다."는 위트 있는 트윗을 남겼다.[49]
- 1968~1975년, 1982~2006년까지 덕 앨리스, 2006~2016년 5월까지 미국의 스포츠재벌 랜디 러너, 그리고 2016년 5월부터 중국 리콘그룹(Recon Group)의 샤졘통이 구단주 였는데 17/18시즌 승격을 하지못하자 재정난에 빠져 상당한 지분을팔고 지분을 매각한 이집트의 부호 나셰프 사위리스가 새구단주가 되었다.
5. 둘러보기
[1] /ˈæstən ˈvɪlə/[2] 이집트 사람으로 오라스콤 텔레콤의 회장이다. 순자산이 75억 달러 정도로 추정되며 포브스 선정 아프리카에서 4위 정도 되는 부호로 뽑혔다.[3] 기존의 샤졘통 회장은 17/18시즌 빌라가 승격을 하지 못하자 재정난에 빠졌고 일부 지분을 매각하여 재정위기를 타파 하였는데 현재의 구단주인 사위리스와 디렉터인 웨슬리 이든스에게 지분 55%를 팔며 주요임원에서 빠지게 되었다.[4] 원래 발음은 /ˈæstən ˈvɪlə/, 애스턴 빌라에 가깝지만 이는 표준 발음이자 상류층이 주로 사용하는 용인발음 기준이고, 런던 코크니에서는 아스톤 빌라에 가깝게 발음한다. (코크니의 특징 중 하나가 a를 'ㅏ'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이다) 영국 축구의 주 소비층이 어떤 계층인지 생각하면 그 계층이 주로 쓰는 발음을 따른 '아스톤 빌라'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일종의 통용 표기라고 보면 된다.[5] 이 표기법, 피파 온라인 3가 생각날 수도 있겠지만 피파 온라인 3에서는 아스톤 빌라라고 표기해 오다가 2016년 로스터 업데이트 이후로 애스턴 빌라로 표기한다.[6] 22개팀에서 20개팀으로 줄어들어 4팀이 강등된 시즌이다.[7] 보르도, 빌바오, 슈테아우아를 꺾고 UEFA컵 8강에 진출했는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탈락했다.[8] 11위였던 토트넘이 리그컵을 우승했고, 13위였던 뉴캐슬이 FA컵 준우승(우승 맨유)해서 6위했음에도 UEFA컵에 나갈 수 없었다.[9] 구웸블리 경기장에서의 마지막 FA컵 결승전이다.[10] 다만 당시 EPL의 리그 순위가 낮았고 첼시가 5위였기 때문에 UEFA컵 출전권은 얻지 못했다. 인터토토컵에 갔는데 준결승에서 셀타 비고에 패해 탈락했다.[11] 하지만 2001/02 시즌 UEFA컵 1라운드에서 크로아티아의 NK 바르텍스에게 광탈당했다.[12] 이 시기에 부담스러운 프리시즌 일정을 이유로 EPL 클럽들은 인터토토컵 출전을 기권했다.[13] 신용카드회사 MBNA 회장이던 앨 러너의 아들이다.[14] 그 중에서도 맨유를 은행빚으로 산 맬컴 글레이저 구단주나 전 리버풀 FC 구단주이던 질레트와 힉스, 두 사람은 러너에 두고두고 견주면서 곱배기로 까였다. 넷 다 미국인이기에 더더욱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리버풀 새 구단주인 미국인 존 헨리는 공격적인 투자, 팬들과의 소통, 개념찬 인터뷰 등으로 리버풀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러너와 같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나 이전까지 무개념인 다른 양키 두 놈에게 시달리던 리버풀 팬들에겐야 말 그대로 헨리'느님'.)[15] 물론 18경기 연속으로 실점한 것은 흠이다.[16] 첼시에 상대전적 1승1무, 빌라파크에서 첼시에 2-0으로 이겼는데 이 경기에서 관전하던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로 하여금 관중석을 박차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얼마 뒤 무리뉴는 첼시를 떠났다. 아스날 원정에서 종료 직전까지 1-0으로 이기고 있었지만 벤트너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아쉽게 비겼고, 안필드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종료 직전까지 2-1로 앞서다 2-2로 비겼다.[17] 1999년 이후 10년 간 첼시는 빌라파크에서 6무3패를 기록했다. 무리뉴도 깨지 못했던 기록.[18] 사실 2001년에도 주장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가 가레스 배리처럼 비슷한 행동을 하고 미들즈브러로 가버린 전례가 있다. 그 전에도 우고 에히오구와 조지 보아텡을 똑같은 방식으로 미들즈브러가 채가서 빌라 팬들은 보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19] 빌라의 유망주였던 게리 케이힐은 빌라 시절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볼튼으로 이적한 뒤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선발되기 까지 하였다.[20] 역시 리버풀에서 맹활약한 미드필더였다.[21] 알렉스 매클리시 감독은 퍼거슨 감독이 애버딘 FC 재임시절 애제자였고, 그와 함께 셀틱과 레인저스 양강 체제인 SPL에서 우승했고, 유럽클럽대항전에서도 우승했다. 퍼거슨은 매클리시를 위해 추천서까지 써주며 그를 강력추천했다.[22] 함부르크 SV가 당시 17경기 9골을 기록중이었지만 경기당 득점률은 빌라의 경기당 0.5골보다 높다.[23] 여담으로 스코틀랜드인인 램버트 감독이 경질되며 프리미어 리그에 스코티시 감독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EPL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 EPL의 터줏대감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스코틀랜드인이라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일이 없었다.[24]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의외로 토트넘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고 승률을 보인 감독이다. 그런 것치곤 유로파도 겨우 나가긴 했지만...[25] 2000년 결승에서는 첼시에게 0-1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26] 결승전에서 맨유를 2-1로 이겼다.[27] 7패 중 6패가 한점 차 패배이다. 이 중 안필드에서 리버풀에게 2:3으로 석패한 것도 있고, 2016년 3월 20일 기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레스터 시티 원정에서 먼저 2-0으로 앞서가고도 2-3으로 역전패당하기도 했다.[28] 여담이지만 이 그릴리쉬는 몇년 뒤 빌라의 핵심선수로 성장한다.[29] 물론 이는 40점 뽑으면 강등 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소리로, 보통은 40점 보다 몇 점 정도 적어도 잔류하는 경우가 많다.[30] 21세 이하팀. 즉 2군[31] 물론 이런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8라운드 기준 EPL 1위를 달리고 있는 레스터 시티가 지난 시즌에 그랬다. 3월을 마친 시점인 29라운드까지 레스터 시티의 성적은 4승7무18패, 승점 19점으로 꼴찌였다. 하지만 막판 9경기에서 7승1무를 쓸어담는 호성적을 거두면서 11승8무19패, 승점 41점으로 기적적으로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다. 또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역시 2006-07 시즌 29라운드까지 5승5무19패로 꼴찌였으나 막판 9경기에서 7승을 거두며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2011-12 시즌 위건 애슬레틱 역시 29라운드까지 4승에 그쳤으나 막판 9경기 강팀들을 연달아 꺾으며 7승을 거뒀고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 세팀이 부진할 때도 현재 빌라 수준의 의지력 결여나 막장스러운 경기력은 보이지 않았다.[32] 그경기가 2016년 4월 9일 저녁11시(한국시간) 경기이다. 여기서 아스톤 빌라가 본머스를 이기고 크리스탈 팰리스가 노리치 시티를 이기면 어느정도의 희망을 가질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면 강등확정이다.[33] 아스톤 빌라는 뉴캐슬의 08-09 시즌 강등 당시에도 시즌 최종전에서 뉴캐슬을 만나 뉴캐슬 데미안 더프의 자책골로 1-0으로 승리하면서 뉴캐슬을 직접 강등시킨 바가 있다. 강등 후 재승격해 돌아온 10-11 시즌의 뉴캐슬에게는 6-0으로 깨지며 뉴캐슬의 시즌 첫 승을 선사하기도 했다.[34] 프리미어 리그를 6위 이내로 마치거나 리그 컵, FA 컵에서 우승해야 한다.[35] 디 마테오 감독은 그에게 선수보다는 스태프로 합류하기를 제안했지만, 페트로프는 선수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면 휴식기를 갖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스태프로의 팀 복귀는 이미 지난해에 이루어졌었다.[36] 재밌는 점은 이번 시즌 뉴캐슬의 1무는 아스톤 빌라를 상대로 거둔 것.[37] 여담으로 스티브 브루스 빌라 감독은 북동부 출신의 유명한 뉴캐슬 팬으로 뉴캐슬의 감독 공백기에 항상 물망에 오르내리는 감독이다. 그러나 선더랜드 감독을 역임했던 경력 탓에 뉴캐슬 팬들의 브루스에 대한 인식은 미적지근하다.[38] 아무리 관객들이 어김없이 온다고 해도 2부리그로 떨어지면 가장 큰 수익 중 하나인 중계권비가 반토막 이상으로 뚝 떨어진다![39] 다만 이후 은퇴 선언 이후 바로 아스톤 빌라 수석코치로 부임하였다.[40] 37라운드 아스날전 이전 까지 빌라는 19위로 이미 강등을 확정지은 노리치 시티 FC를 제외한 구단 중 가장 강등과 가까워보였으나, 아스날전 승리를 포함해 왓포드의 대패 등 운 역시 따라주면서 바로 강등권을 벗어날 수 있었다.[41] 딘 스미스가 월솔 FC, 브렌트포드 FC 재임 시절 부터 계속 데리고 다녔던 수석 코치이다. 세 수석 코치들 중에는 딘 스미스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발을 맞춰온 코치라고 볼 수 있다.[42] 마지막 리그 우승은 1980-81 시즌이다.[43] 현 프리미어 리그[44] 현 UEFA 챔피언스 리그[45] 잉글랜드에서 챔피언스 리그 역대 우승팀은 맨유, 리버풀 FC, 노팅엄 포레스트, 아스톤 빌라, 첼시 FC 뿐이다. 아스날 FC이랑 리즈 유나이티드는 준우승이 최고성적.[46] 아스톤 빌라가 우승한 당시에는 말 그대로 각국 1부 리그의 우승팀들만이 출전했을 뿐 아니라 수준차 또한 훨씬 적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현행의 챔스보다 더 어려운 대회였다... 라는 주장은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반대인 데다가 길고 긴 현행 챔스 일정을 우습게 보는 서술이므로 걸러 듣자. 다만 요즘 챔피언스리그는 빅리그 몰아주기식이 심하므로 4대리그를 제외한 왠만한 팀들은 조별리그에서 만나고 토너먼트에서나 비슷한 수준이 만나기에 빅클럽일수록 우승하기 수월한것은 사실이다.[47] 1974-75 시즌 분데스리가 10위[48] 실제로 2018-19 시즌에서 아스톤 빌라가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고 프리미어 리그에 복귀하자 윌리엄 왕자가 좋아하는 모습을 관중 카메라에 포착되었다.[49] 그리고 3년 후, 아스톤 빌라는 강등당했다.(...)